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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스스로 돌이키는 자 - 박동화 목사2016-07-12 02: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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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눅 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눅 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 15: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눅 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눅 15: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눅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예수가 중심에 계신 분들은 이렇게 선포합시다.  “축복 합니다.”
  .2011년 7월 달 달력을 보셨습니까?  금요일이 몆 번 있습니까? 토요일이, 주일이 몆 번 입니까?  모두 5번씩 이렇게 금 토 일 5번씩 들은 것이 823년만에 온 것 이랍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런 세상 속에서 남이 경험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도 하나님은 나에게  최 상 의 것을 주시기 때문에 감사하며 살아 가야 합니다.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은혜속에 사는지 모릅니다. 볼티모어 교회에 나오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함께 좋으신 성도들과 예배하게 된 것 감사합니다.
감사의 주역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축복의 주역이 되시기ㅡㄹ 바랍니다.  요구하며 살지 않고   만들어 나누어주는 자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은혜를 나는 여러분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아버지와  돌아온 아들    

세상에는 두 길이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순종하여 아버지와 행복하게 사는 길과
아버지를 떠나 마음껏 즐기며 세상의 재미를 만끽하는 두 길이 있는 것입니다.

똑같이 우리에게도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택하여 아버지와 영원토록 살수 있는 길과 영원토록 지옥에 살아야 하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길이 있는 것입니다.

둘 째 아들은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행복하게 산 것에 대한 감사를 모르고
아버지의 재산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에게 분깃을 나눠 줍니다.

몇 일 후 작은 아들은 재산을 다 정리해서 먼 길로 떠나 갔습니다.
가진 돈을 (형의 말을 인용한다면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함께  먹어 치웠습니다.  
이제 땡전 한푼 없는 알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업친데 겹친격으로 그 나라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는 그 나라 백성 중 돼지 사육장에 취직을 햇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은 돼지에게 주는 사료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나마 돼지의 샤료로 쓰는 쥐엄열매도 주는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켰다고 예수님의 비유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회개를 가르치기 위한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을 찼ㄱ고 찾으십니다.

1. 진정으로 회개하는자를  기뻐 하십니다.
탕자의 일이  
바로  내모습이 아닌가 살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재물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인격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돈도 주셧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좋은 직장도 , 직업도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나에게 주신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육신의 정욕을 안목의 정욕을 따라  
내 맘대로 내 뜻에 따라 내 생각대로 살아가는 내가 아닌가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40년동안  제일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면
“사람이 떡으로 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말씀을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이시대에도 똑같이 말씀하고 싶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옛날 애굽 에서 의 삶을 동정하며 새로운 하나님의 모험을 거절하고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전혀 새로운 변화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면서
아버지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 자기 고집대로 , 멋대로 살아가려던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눅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그 사람의 사람됨을 알려면
남이 고통 당할 때 그 불행을 보면서 판단하는 것을 보면  
그가 성숙한 사람인지  아니면 미성숙한 사람인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을 비판하지말고
그 비판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비판할 줄 아는 그 사람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인의 증거는 자기 자신을 비판할 줄 아는 능력이 있느냐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 아들은[현대인의성경]눅 15:30   동생을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창녀들과 놀아나다 아버지의 재산을 다 없애 버린 동생이 돌아왔다고 아버지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으셨습니다.'
.    
자기 자신을 못보고 동생이 돌아왔을 때 동생을 비평합니다.
참 사람다운 사람이라면 동생이 돌아왔으니 얼마나 아버지 떠나 고생이 많았게 구나 하며 아버지! 제가 송아지 잡을깨요 하며 나서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앞에서 대들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올 때 아마도 거울을 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 입니다.
얼굴에 화장은 잘 되었는지 옷은 잘 어울리는지, 머리는 어떠한지,
거울을 보고 준비합니다.
마찬 가지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머리 숙여 먼저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죄악 된 것을 먼저 돌이키는 회개를  하는 것 입니다.

내자신 연약했던 것,   못난 부분 , 더러운 것,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못된 성품,  남의 허물은 보면서 자기 눈에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회개 하는 것 입니다.

내가 얼마나 치사하고 졸열한 존재인지.
나의 존재가  남들의 약점만 들추어내고 좋은 점은 말 하려 하지 않는 존재인지.
나의 존재가     남들을 헐뜯고 비난하는 존재는 아닌지
나의 존재가       남이 잘되는 것은 배아파한는 인간은 아닌지.
  나의 존재가       은근히 나만 잘되기를 바라는 치사한 자는 아닌지.
  나의 존재가       얼마나 불평이 많은 존재인지.
   나의 존재가       얼마나 걷과 속이 다른 존재인지.
우리는 하나님앞에 설 때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 기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기를 비판하는 신앙이 있어야 진정 그리스도인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회개는 나 자신을 못난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나 자신을 정죄하여 힘도 없는 사람을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존귀하게 받드는 일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 시키는 역사가 있게 만드는 것 입니다.

ex: 스펄전 목사님은 방에 들어가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때 아내가 물었습니다.왜 통곡하셨습니까? 그때 목사님의 대답” 내가 요즘 십자가를 보면서도 감격이 없어졌어” 하더랍니다.

교회에 다녀도 죄 사함 받은 감격이 없습니다. 실망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곤고함 느끼는 것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둘째 아들이 세상에 나가 형편없는 고생과 재난을 당하였습니다.
재난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입니다.
재난은 하나님이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는 표시 이기도 합니다. 힘들어 하지말고 나에게 돌아오라는 싸인 과도 같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사단의 가시를 주신 것은
     (고후12:7-10)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울에게 머물 수 있도록 함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바다에서 큰 놀이 일어난 것은
      (요11;4. 마8:23-27)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때론  우리에게도 이렇게 힘든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럴 때 당황하거나 두려워 하지 마십시요 우리에게  문제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신실한 사랑을 주실 것입니다.

아버지 품으로 달려만 가시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실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성숙하게 하시고 변화 시킬 것입니다.

1. 오 신실하신 주 내아버지여늘 함께 계시니  두렴없네  그사랑 변찮고날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한결같네                            

2.봄철과  또 여름 가을과 겨울 해와 달 별들도 다 주의 것 만물이 하나로 드러낸 증거 신실한  주사랑  나타내네                              

3. 내죄를 사하여 안위하시고 주친히 오셔서 인도하네  오늘의 힘되고 내일의 소망 주만이 만복을 내리시네                                                             
                
 후렴: 오 신실 하신 주 오 신실 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 하신 주 나의 구주 아-멘

아버지를 떠난 것이 고난인 것 입니다. 고난과 환난은
하나님께서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초청하시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기다림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눅 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눅 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얼마나 자신을 낮추고 아버지를 아버지로 높이는 둘째 아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수 없는 고난을 격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신앙은 지금 어떻합니까?
영적으로 갈급함과 주림이 죽을 지경입니까?
바로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능력으로 채워 주시려고 기다리는 타임인 것입니다.
두팔을 벌리고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려야 합니다.
*20절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 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우리는 현상 유지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        변화 하려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죄악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성숙과 변화를 가로막는 그 모든 것을 우리는 단호하게
짤라 버려야 합니다.  
무엇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가로 막는 것입니까?
무엇입니까? 인생을 살면서 무사안일 하게 살려는 것 입니다.
                  새로운 것을 창출하려고 하지 않는 게으른 것입니다.
                   변화를 두려워 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지배 받기를 두려워 하는 것. 성령의 충만을 두려워하는 것.
익숙한 것 만 감당하고  모험을 감행 하지 않고 안일하게 하려는 것 들 입니다.

이런 것 들은 변화도 하나님의 능력도 받을 수가 없는 것들인 것입니다.
마치 예수 님께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땅 파고 묻어 두었다가 책망 받고 그 한 달란트도 빼앗기고 바깥 어두운 데서 울 수밖에 없는 존재와 같은 것입니다.  마 25: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마 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마 25:26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 25:27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마 25:28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마 25:29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어떻게 보면 그럴 듯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속이지 못합니다.
주인의 말씀을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악하고 게을러 나도 이를 볼 수 없고  그렇다고 남이 이를 남기는 것을 배 아파하는 심보였던 것입니다.
자기가 할 수 없으면 당연히 주인의 것이니까 취리 하는 자들에게 주어
본전과 변리를 받게 주인에게 충성을 했더라면 이런 형벌을 면했을 것입니다.

일 대 일 사역,       전에 경험 해 보지 않은 것입니다.
목회자가 권하고 사역자가 권합니다. 나는 일대일  그 자체만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사역을 통해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를 더 깊이 알아 가자는 것입니다.  또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경험 하자는 것입니다.

인생은 모험하며 살도록 하나님께서 창조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모세는 80에 부르셨습니다.40세에 그는 동족의 고역과 박해 당함을 보고 애굽 사람을  힘으로 쳐 죽였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힘깨나 쓸 때 부르시지 않았나? 생각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은 모세에게 십보라와 결혼하여 아들 낳게하고 이름을 게르솜 이라고 지었습니다. 출 2:22절에 “타국에서 객이 되었다”라는 이름을 지은 것을 볼 때
철저하게 자신을 내려 놓았을 때 애굽에서 고통과 박해를 당하는 민족의 지도 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는 120세 까지 사역 하다가 하나님 앞으로 갔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인생을 살았는가.  생각해 봅니다.  
120세 까지 생산적인 삶을 살기를 기원합니다.

둘째 아들처럼    
아버지! 손들고 옵니다 날 받아주소서 할 때  
아버지는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기쁜 것입니다.
첫째  아버지는 누더기 옷벗기고 제일 좋은옷 입혀 주시는 일 때문에 기쁩니다
         이제일 졸은 옷 입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소년 시절에  옷 몇 벌 없습니다. 언제가 제일 좋으냐 새 옷 사주실 때 제일 기뻣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 주님은 우리의 옛 더러운 벗기고 밝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혀 주십니다. 예수의 피로 깨끗하게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둘째로 아버지는 아들의 손에 가락지를 끼우는 기쁨이었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야 하는 약속의 인장 반지 !   이 반지 받으셨습니까?
어데에 가도 이 아버지의 반지는 유난히 빛이 났을 것  입니다. 함부로 아들을 건들 수 가 없습니다. 이반지 있으면 힘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세 째로 아버지는  발에 신을 신기는 일이 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어디든 모두 신을 신고 갈수 가 있습니다. 이 기쁨의 신 복음의 신을 신고 어디든 가야 합니다. 자진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는 순교의 자리까지 갈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눅 15: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눅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자신이 아버지의 최상의 기쁨인 존재 가 된 것입니다. 존 뉴턴(John Newton)이라는 부호가 있다. 그에게는 2백여 명 정도의 부하가 있었고 노예 장사를 해서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런 그가 한번은 런던에 정박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내 한 작은 감리교회에서 경영하는 전도 처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예배를 드리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한 참 취한 김에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장난 삼아 들어가 본 것이었다. 그런데 한 구석에 앉아 있던 뉴턴이 젊은 설교자가 열심히 설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러자 차차 그의 얼굴은 변하였고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도도하던 그의 고개가 숙여졌다. 드디어 그토록 억세고 돈만 알며 거만했던 뉴턴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하였다.
그 날 그가 들은 설교는 단순히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탕자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자기의 과거를 철저히 회개하며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살기를 결심하는 거듭남의 경험을 하였다. 그는 후에 찬송가 작사자 가 되었다. 그리고 이 날의 체험을 기억하며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라는 찬송시를 지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알코올 중독에 ,억세고, 돈만 알고, 거만했던 뉴톤이 “아버지 품안으로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듣고 회개 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변화 시켜 주셨고 일평생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후일에 그를 찬송가 작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스스로 돌이키고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 갈 때 입니다.
아기의 부모는 아기가 태어나 잘 자라줄 때 제일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왜 기쁘냐.   하루 하루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쑥 쑥 성장 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날마다 성장하여 자신도 기쁘고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