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글보기
제목고려장 당하신 하나님 (겔 44:25-27) - 신항규 목사2016-07-12 02:20:19
작성자
25 시체를 가까이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못할 것이로되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시집 가지 아니한 자매를 위하여는 더럽힐 수 있으며
26 이런 자는 스스로 정결케 한 후에 칠일을 더 지낼 것이요
27 성소에 수종들려 하여 안 뜰과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속죄제를 드릴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44:25-27]

  한국의 한 노부부가 가지고 있던 재산을 정리해서 캐나다에 있는 큰 딸에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 딸이 이 재산을 받은 후에 얼마 안가서 부모를 주거 침입죄로 경찰에 신고해서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할 수 없이 이 노부부는 근교에 있는 작은 딸의 집에 가서 사는데 캐나다 정부에서 이 노부부를 주거를 침입한 범죄자로서 추방명령을 내렸습니다. 노부부는 함께 사는 작은 딸이 비행기 표를 마련해 주기를 기대했지만 ‘나는 부모님께 할 만큼 다 했다 더 이상 줄 돈이 없다’면서 그냥 모르는 체 했다고 합니다.

   결국 근교에 사는 교민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서 겨우 비행기 표를 사 주어서 한국에 올 수 있었으며  이 노부부가 보호시설에서 자식에게 한이 맺혀 눈물로 통곡하는 것이 방송이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의 살람들은 "저런 천하에 배은 망덕한 인간도 아닌 자식이 있나?" 하고 욕을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면서 고려장을 당한 노부부처럼 서운해 하시며 한이 있으시다면 어떠시겠습니까?

“나 같이 열심히 믿는 자가 그럴 리가 있나”

  먼저 하나님의 자녀라도 이 노부부의 작은 딸처럼 하나님을 크게 서운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작은 딸이 부모를 모시고 살았어도 부모에게 그 까짓 비행기 표 하나 안해드렸을 때 부모가 그동안 잘 했던 것 다 소용없다 - 서운해 한 것처럼 우리가 작은일 하나를 무시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 서운해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시체를 가까이 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고 나와 있습니다.
   시체가 무슨 부정한 것이길래 시체를 가까이 하지 못하냐 시체를 만지는 것이 무슨 큰 죄가 될까요?
  구약에 보면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든지 시체를 만지지 말라든지 이런 것이 많이 있는데 왜 이런 사소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최초로 인간에게 내린 명령은 아주 사소한 것-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는 열매 자체에 무슨 독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에 그 의미를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 사소한 계명을 무시하고 죄에 빠져 버리고 말았으며 모든 인간은 일상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소한 것에 명령을 내리신 이유는 바로 먹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일상 생활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훈련을 하기 위함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눅 16:10]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 5:19]

  돼지고기나 이런 새나 이런 것들은 절대 먹지 말라- 먹는 것에서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높이라- 우리가 실제적으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 필요는 없지만 음식을 대할 때 하나님을 높이고 기억해야 하는 그 의미는 남아 있기 때문에 성도는 식사 전에 꼭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식사 기도를 별거 아니게 생각하고 잘 잊어 버리든지 아니면 머리에는 음식만 생각하고 그냥 입으로만 몇마디 중얼거리고 밥을 먹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서운해 하십니다.  작은 것을 하나님께 아뢰며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시간을 기도해도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시체를 만지지 말라는 말은 또한 죽은 사람을 볼 때도  하나님의 권위를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시체를 만져도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을 볼 때 무시해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런데 '부담스러운데 그냥 하지 말자' 하고 넘어가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서운해 하시며 그 외에 내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는 큰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다 무의미해 지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이 노부부의 첫째 딸처럼 하나님 가슴에 한을 남기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시체를 만지는 것은 부정하다. 하지만 내 형제 자매 친족을 위해서는 만져도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가족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시며 모든 사람에게 가족을 사랑하고 돌보는 의무를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 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딤전 5:8]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1 4:20]

눈에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다 거짓이요, 옆에 있는 자기 배우자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우리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다 헛것이요, 내가 가정에서 함부로 화내고 하면서 바깥에서 잘하는 것은 100% 외식인 것입니다.

   “이 소자 중 지극히 적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며 지극히 적은 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내게 하지 않은 것이라”

   우리 가족 친족을 허물이 없다는 이유로, 단점을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화내고 무시하고 욕할 때 하나님께서는 고려장 당한 부모처럼 마음에 큰 상처와 한이 맺히시는 것입니다.

  프랑스 민화에 한 부자 농부가 살고 있었는데 아내가 너무 예쁜 나머지 밭에 일하러 나가기만 하면 옛날에 아내와 사귀던 남자들이 자꾸 집에 찾아 와서 이  농부가 이것을 고민하던 중 방법을 생각했는데 아침에는 실컷 아내를 두들겨서 아내가 하루종일 울고 있으면 옛날 남자 친구들이 집에 찾아 왔다가 울고 있는 아내를 보고 그냥 돌아가고, 저녁에 이 농부가 돌아와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그 다음 날 아침에는 또 실컷 두들기고 저녁에는 빌고 했다고 합니다.

  성도가 가족에게 내 마음대로 함부로 함으로 해서 눈물나게 하고-하나님 가슴을 실컷 몽둥이로 두들기고 교회 나와서는 눈물로 빌고 -또 나가서는 실컷 두들기고 또 눈물로 빌고- 하나님은 우리 노리개감이 아닌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 가슴에 한을 맺히게 하는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노부부가 그렇게 자식에게 당하고도 하는 말이 지금이라도 소원이 있다면 내 딸들이 잘못했다고 하고 같이 살자고 하면 지금이라도 남은 여생을 딸들과 손자들과 같이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자식에게 그렇게 배신을 당하고도 아직 사랑과 미련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오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잘못하는 것을 아무 감정도 없이 묵묵히 바라만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셨으며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우리가 잘못할 때 가슴이 찢어지십니다.

   성도가 작은 것을 무시하고 함부로 할 때 하나님께서는 서운해 하시며  그동안 잘 했던것 다 소용 없어지고 맙니다.  

  밥이 식는 한이 있어도 감사하는 마음이 들 때까지 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내 친구가 나를 부담스러워서 멀리한다고 해도 예수 믿으라고 한마디 꼭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내가 내 가족 친족에게 결코 함부로 대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섬기듯이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마 25:21]

적은 것에 충성하며 가족을 잘 돌보며 예수님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 영광 드러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